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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서원

 

 

돈암서원()은 1634년(인조 12)에 사계() 김장생(, 1548∼1631)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그의 사상을 잇기 위해 창건되었다. 1660년(현종 1)에 '돈암()'이라는 이름으로 사액을 받았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서원 중의 하나이다.

돈암서원 전경

돈암서원 전경

돈암서원은 평지에 자리잡은 대표적인 서원에 속한다.

'돈암'은 서원이 창건되었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하임리 숲말 산기슭에 있는 바위 이름으로, 현재 서원의 자리에서 서북쪽으로 약 1.5㎞ 떨어진 곳에 있다. 돈암서원은 1880년(고종 17) 현재의 위치인 연산면 임리 74로 이건하였는데, 이는 원래 서원이 있던 자리의 지대가 낮아 홍수로 서원에 물이 들어와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계 김장생은 구봉() 송익필(, 1534∼1599)과 율곡() 이이(, 1536∼1584)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우고 이어받아 17세기 사림의 시대에 걸맞게 조선 예학()을 정비한 예학의 대가이다.

김장생은 35세가 되던 해에 아버지 황강() 김계휘(, 1526∼1581)가 세상을 떠나자, 상례와 제례를 한결같이 가례대로 하였는데, 이듬해에 김장생은 신의경()이 편집한 「상제서()」를 정리하고 절충하여 일반인이 쓰기에 편하도록 정리한 「상례비요()」를 완성하였으며, 52세(1599년)에는 관혼상제의 예를 고찰한 「가례집람()」을 완성하였다.

김장생이 예론()에 큰 관심을 기울였던 이유는, "모든 인간이 어질고 바른 마음으로 서로를 도와가며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개개인의 행동 방식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질서가 필요하다"라고 보고, 그것을 '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돈암서원은 예학을 대성한 사계 김장생을 모시면서부터 창건과 함께 조선 중기 이후 우리나라 예학의 산실이 되었다.

연산 땅에 돈암서원이 창건되기 이전 김장생의 아버지 김계휘는 1557년(명종 12) 연산 대둔산() 고운사() 경내에 정회당()을 설립해 후학 양성과 향촌 교화에 전념하였고, 김장생은 1602년(선조 35) 연산으로 내려와 양성당()을 세워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양성당은 김장생을 따르고 그에게 배우고자 하는 유생들이 모여 강학하던 서재이다.

돈암서원은 양성당을 모체로 하여 건립되었고, 서원의 건물 배치와 규모는 김장생이 창건했던 강경()의 죽림서원(, 옛 황산서원)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한다. 현재의 서원은 동쪽을 향해 앞으로 펼쳐진 일대의 들판을 내다보고 있다. 서원 경내의 건물과 시설물로는 사당인 숭례사(), 강당인 양성당, 동재와 서재, 응도당(), 장판각, 정회당, 산앙루, 내삼문, 외삼문, 하마비, 홍살문 등이 있다.

돈암서원 배치도

돈암서원 배치도

서원 경내 가장 안쪽에 위치한 사당은 담으로 둘러져 있는데, 앞쪽의 담은 꽃담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앞쪽 열은 퇴칸이다. 사당 내부에는 주벽인 서벽 중앙에 사계, 왼쪽인 북벽에는 안에서 밖으로 신독재() 김집(, 1574∼1656)과 우암() 송시열(, 1607∼1689), 오른쪽인 남벽에는 동춘당() 송준길(, 1606∼1672)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이들 네 분은 모두 문묘에 종사하였기 때문에 돈암서원은 선정()서원이기도 하다.

돈암서원 강당 뒤쪽과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 사이의 공간

돈암서원 강당 뒤쪽과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 사이의 공간양성당 뒤에 형성된 공간은 돈암서원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내삼문 좌우의 꽃담과 강당, 전사청, 장판각으로 둘러진 마당은 돈암서원 공간의 절정을 이룬다.

내삼문 앞에 위치한 양성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중앙 3칸은 전후에 퇴를 둔 대청이며, 좌우에는 온돌방 각 1칸씩을 두었다. 강당 앞에는 마당을 마주보며 최근에 재건한 동재와 서재가 서 있다. 강당 앞 오른쪽인 동남쪽에는 정면 5칸, 측면 3칸 건물인 응도당이 자리하고 있다.

응도당

응도당

응도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 건물로,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박공면에 풍판(風板)을 설치했고, 그 밑에 보첨(補檐)과 같은 구조를 꾸며 처마를 다시 형성했다.

응도당은 옛터에 남아 있던 강당 건물이었는데 1971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되었다. 이 건물은 성리학자들에게 중요시되는 예제() 중에서 묘침제()에 근거하여 영건된 점에서 돈암서원에 모셔진 김장생의 예학을 반영하는 건물로 주목을 받는다. 묘침제는, 사묘 건물에서 제례를 행하는 묘()는 봉향 대상이 되는 침() 앞에 세우도록 규정하며 건축 형식을 제시하고 있는데, 서원의 강당은 묘()에 해당한다.

강학공간

강학공간

서원 전면은 강당·동재·서재로 구성된 강학공간을 형성하고, 오른쪽 앞 동남쪽으로는 응도당이, 서남쪽 뒤로는 장판각과 정회당이 자리잡았다. 강당 뒤에는 제향공간이 일곽을 이룬다.

          

돈암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돈암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네이버 지식백과]돈암서원 (한국 미의 재발견 - 궁궐 · 유교건축, 2004. 11. 30.,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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