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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서씨포죽도>의 사연과 화폭의 단면

 

열녀서씨포죽도.jpg

 


<열녀서씨포죽도>는 2012년 10월 21일 방영된 KBS ‘진품명품’이란 프로그램에서 고가의 감정가가 책정되어 화제가 된 그림이다. 이처럼 엄청난 가격에 주변사람들은 놀라면서 그림의 내력과 특성에 대해 궁금해 한다. 수 백 년에 걸친 역사적 배경이 있는 데다, TV화면에서 보여준 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측면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이 그려지기까지에는 여러 문헌적 배경이 있으며, 그림 역시 다채롭고 복합적인 특성이 있다.  

 

이 그림의 역사적 지층은 다음과 같다. 세종대왕 때 경북 군위에 살았던 도운봉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분이 대나무를 좋아했으나 20대 초반의 이른 나이로 죽는다. 그래서 부인인 서씨가 17년간이나 뒤뜰 대 숲에서 슬퍼하자, 어느 날 홀연히 대숲에서 흰 대나무가 자랐다. 이를 향당에서 경상도 감사에게 알리고, 다시 경상도 감사가 세종대왕에게 장계를 올리자, 왕이 <백죽도>를 그려 올리라 명한다. <백죽도>를 본 왕이 서씨에게 열녀의 증표인 정문 및 복호를 명한다. 이런 사연이 『세종실록 20년 7월 기해조(17일)』, 1482년(성종13년) 간행된『신증동국여지승람』, 1514년(중종9년)에 간행된『속삼강행실도』「열녀편」에 실리고, 이어 1617년(광해군9년)에 간행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도 실린다.

 

세종대왕이 내린 작첩이나 문서 및 사적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멸실된다. 이후 영조 2년인 1726년, 또는 그 이전에 문중에서 의뢰해서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포죽도가 낡아 정조 19년인 1795년에 당시 오늘의 경상도 영천 지역에 찰방(현 우체국장)으로 재임하던 당대 대표적인 초상화가인 화산관 이명기(華山館 李命基)에게 부탁해서 새롭게 그린 것이 바로 이번에 TV에 나온 <열녀서씨포죽도>인 것이다. 
이 과정을 요약하면, 세종대왕께 진상된 <백죽도(모필화)>-> 중중 때 제작된 『속삼강행실도』의 <서씨포죽도(목판화)> -> 광해군 때 편찬된 『신증동국신삼강행실도』의 <서씨포죽도(원간본 목판화, 중간본 목판화)> -> <옛 포죽도(모필화)> -> 정조 때 그린 <열녀서씨포죽도(이명기 중모작, 모필화)> 순이다.

 

이들 그림 중에서 세종대왕께 진상된 <백죽도>와 18세기 초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옛 포죽도>는 남아 있지 않다.  <옛 포죽도>는 1726년(영조 2년)에 써서 이 그림 뒷면에 붙인「포죽도 후서」만이 부친이 소장한 옛 전적(*『정부인달성서씨 사적』이며 필사본임)에 남아 있다. 이 후서에 따라 <열녀서씨 포죽도>의 그림 오른 쪽 상단에는 <옛 포죽도>를 그린 년도를 ‘숭정후(崇禎後) 병오중춘(丙午仲春), 즉 1726년 봄으로 써 놓았다.
그러나「포죽도 후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새로 그렸다는 얘기가 없고, 유도(遺圖), 즉 ‘남아 있는 그림’이란 용어를 쓴 것으로 보아 이전에 그린 것으로도 보인다. 다만 <열녀서씨 포죽도>의 화풍, 그 중에서도 먼 산을 그린 방식은 겸재 정선(1676~1759)이후 흔히 구사되는 기법이어서 열녀서씨 포죽도가 이전 그림을 충실하게 묘사했다면 겸재의 생몰연대 상 <옛 포죽도>를 그린 상한년도도 18세초로 추정된다.
사실 겸재 정선이 고향 군위에서 가까운 대구 인근의 하양에서 1721년부터 1726년까지 하양현감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영남의 풍토상 화가가 존재할 수 없는 여건이므로 <옛 포죽도>가 겸재 정선의 그림일 가능성이 있으나,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 없다.(*겸재 정선 특유의 활달하고 시원한 필치는 청하현감 시절인 1733년 이후 그림에서 볼 수 있음)      

 

어떠한 정신적 의미와 가치도 회화에서는 물적 대상으로 표현된다. <열녀서씨포죽도>의 전체 외형은 족자축에서 족자끈인 가는 생명주 실까지 조선시대 족자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만, 어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도 이와 동일한 형태의 족자를 본적이 없다.
족자 크기는 141.5×69.4 cm, 그림 크기는 72. 6×51.9cm(*그림 윗부분 글씨가 쓰여 있는 부분을 포함한 작품지는 90.0×59.0cm 크기임)로 옛 그림으로는 상당한 크기의 대작이다.
일견 소박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족자 자체도 요즘의 일본식 족자와는 매우 다름을 알 수 있다. 족자는 흔히 보는 비단이 아니라 종이로 만들어졌는데, 쪽물을 들인 종이에다 사방연속 卍자 문양의 목각판으로 더 짙은 색의 문양이 화려하지 않게 찍혀 있다. 요즘은 이러한 장식이나 족자를 만드는 것을 ‘표구’라 하지만 조선시대는 ‘장황(裝潢)’이라 했다. 그래서 장황법에 따라 족자가 제작되었는데, 부분마다 세부명칭이 있다. 그림 위아래는  윗단(天頭)과 아랫단(地脚), 양 옆은 가욋단, 아랫단의 화면을 균일하게 당겨주는 역할을 하는 목축은 족자축이라 한다. 윗단의 단면이 세모형인 나무는 반달(上杆)이라 부른다.
이 족자 그림은 말아 놓은 상태에서는 작고 가벼운 원통형이어서 관리 및 휴대하기도 용이하지만, 위에서 펼치는 순간부터 눈부시게 맑은 날의 깊고 그윽한 가을하늘빛 쪽물을 들인 종이 위에 만자 문양을 찍은 바탕을 배경으로 옅은 황색 바탕의 그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열녀서씨포죽도>는 이명기가 이전 그림을 중모(重摹), 즉 다시 그린 그림이지만 그의 필력이나 채색의 기량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전통회화의 특성 때문에 이런 그림은 창작된 그림과 마찬가지로 인정된다. 이 그림은 수묵화의 농담, 색의 짙고 옅음의 차이를 원용하여 3차원적 공간감을 구현하고 있다.

이 그림의 두드러진 특색은 전경의 집 뒤 느티나무와 살구나무로 추정되는 나뭇잎에서 볼 수 있는 채색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듯, 기운생동의 필력을 자유자재로 리듬감 있는 필치로 구사하는 능숙한 필력과 함께, 한 폭의 훌륭한 채색화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채색은 매우 맑고 고우면서도 천연안료이기 때문에 은은하게 깊은 맛이 있다. 또한 화면에서 부각되는 부분의 배경을 이루는 여백 부분에 옅은 색채를 반복해서 칠한 바림 기법도 이 그림의 특색이다.

 

<열녀서씨포죽도>는 전체적으로 채색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런 필력이 결합된 그림이다. 무덤 앞의 소나무에서 보여주는 뛰어난 필력은 이 부분만 따로 보면 한 폭의 탈속한 문인화 필치인양 자연스런 필법과 묵법을 구사한다. 
요즘의 전통회화나 서예를 보면 종이도 그렇고 흔히 먹색이 너무 탁하고 그 표면적 질감도 거친 경우가 많다. 반면에 훌륭한 전통 서예나 회화의 먹색을 보면 아무리 짙어도 탁하지 않으며, 윤기가 느껴질 정도로 맑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농담, 즉 짙고 옅음이 그대로 드러나 그림을 그린이나 글쓴이의 숨결이나 힘이 그대로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 주된 이유는 먹의 질도 차이가 있겠지만 역시 바탕인 종이 재질의 차이가 크다. 조선시대의 고급한지나 장지는 요즘의 한지처럼 거칠거나, 화선지처럼 먹이 잘 번지는 종이가 아니다. <열녀서씨포죽도>에 쓰인 최고급 한지의 경우는 마치 코팅한 것처럼 표면이 반질반질해서 먹이 번지지 않으며, 이러한 종이의 반발력에 의해 붓이 더욱 탄력적으로 구사되고 농담처리도 매우 맑으면서도 다양한 것이다.

 

<열녀서씨포죽도>는 매우 단아한 기품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면서도 마치 역사 속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듯, 흡인력이 강한 그림이다. 그래서 그림을 계속 들여다보면 르네 마그리트 그림과 유사한 초현실주의 그림 같다. 특히 전경·후경의 실경 속에 조릿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뒷모습만 보이는 서씨가 붙잡고 있는 흰 대나무, 즉 백죽이 보이는 데, 백죽을 마치 흰 뼈대처럼, 댓잎 부분을 흰 그늘의 환영(幻影)처럼 묘사하고, 게다가 집 안의 ‘대지팡이(苴仗)’에 돋아난 댓잎까지 묘하게 융합되어 있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사라진 듯한  느낌을 준다. 예술의 세계는 기록된 문헌 넘어 또 다른 지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열녀서씨포죽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우리는 현시대와는 크게 다른 전통적 문화유산을 갖고 있는 땅에서 살고 있다. 다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런 자산을 잊고 사는 것이다. 전통회화는 단지 한 시대 한 작가의 개성의 표현이기보다는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인간세(人間世)를 보는 또 다른 창이자, 세계를 드러내는 독자적 방식이다. 근(近)과 원(遠)도,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도 우리의 익숙한 시각과 상이하다. 이러한 전통회화의 특색에 대해 주목하면 우리의 풍토와 문화적 특성에 대해 더 넓고 깊은 차원에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 또한 여러 지층을 간직한 한 폭의 그림은 오탁악세(五濁惡世)를 정화하는 무한한 상상력과 영감의 대상이다. 
       
                             2012년 10월 23일  도 병 훈

* 이 글은 졸고 「열녀서씨와 화산관 이명기의 그림세계」가 매우 학술적이고 긴 글이어서   <열녀서씨포죽도>에다 초점을 맞추어 간략히 쓰되 그림의 특성에 더 주안점을 두고 쓴 것임.  

** 10월 23일에 <열녀서씨포죽도>를 문중에 양도했다. 1996년 이래 두 번에 걸쳐 모사할 때, 그리고 이번 진품명품 프로그램 녹화로 인해 잠시 이 그림을 다시 보관하면서 그림을 가까이서 직접 보고 연구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그렇지만 이번 TV 방송에서 워낙 거금의 감정가가 매겨짐으로써 가정집에서는 보관할 수 없게 됨에 따라 문중회의를 거쳐 고향 인근에 위치한 안동국학원에 맡기게 되었다.   

 

자료출처:대안미술공간 소나무 도병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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